2024년 6월 29일
나는 진짜
힘들어도 티 안내는 으른이 되고 싶었는데
티가 너무 나서
메가커피에서 이따시만한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사서 들여보내주시고
아 피곤해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2024년 6월 28일
야야 끝나간다
마지막까지 잘하자
괜한 짜증을 내지말자
내가 성격파탄자라는 걸 굳이 광고할 필요는 없다 ㅋㅋㅋ
2024년 6월 27일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외부의 요인에 짜증을 그만 내고
내부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내 문제는 무엇인가
에잇…
절반 지났다
카리카리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하고
오늘 그래서 생각을 다시 했고
약을 못 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시작을 했다
어떤 판단은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
바라기로는
모든 것이 옳은 방향을 향해 있기를
2024년 6월 26일
외부를 둘러보고 탐색하는 자아와
내면으로 침잠하는 자아가 충돌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다툰다
어제 꿈을 꾼 것 같다
나는 멘탈이 없는 환자의 저나트륨혈증은 굳이 교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이분은 severe dehydration때문에 생긴 hyponatremia이니 수액공급만 잘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예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나를 매서운 눈으로 돌아보며 선배이자 교수님이셨던 분이 질책하셨다
‘이 사람에게 SIADH portion은 없나요?’
나는 다시 얼어버려서 어버버거렸고
자신의 무능함과 불성실함을 그대로 들켜버린 인간은 쥐구멍을 찾고…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그러니까 이제 절반 지난거지?
아휴…
2024년 6월 25일
어제 집에 가자 마자 (밥은 병원에서 먹고)
과일 2개 깎아먹고
그대로 누워서 잤다
나갔다 온다고 운동복 갈아입었다가
중간에 깨서 후다닥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잤다
창밖 자동차 소리에 퍼뜩 깨서 다급한 손으로 핸드폰을 찾아 켜보니
3시 반이었다 휴우 다행
한 시간 뒤 알람 맞춰놓고 충전기 연결해 놓고 다시 자다 깨서
할일 하고 출근했다
ㅇㅇ때와 패턴이 똑같아서 그런 나를 보는게 재밌었다
음, 나는 이정도 로딩이 가해지면 이런 행동을 하는군
아, 비타민 overdose로 힘 빠져서 식겁했다 어휴
설사도 했는데 원인이 이건지는 잘 모르겠음 가능성은 있다고 봄
그리고 오늘도 출근했는데 일이 일이 산더미 산더미
언제끈나 구린 표정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으면
시간은 어떻게든 지가 알아서 흐르게 되어 있고
환자는 정리가 되게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걷는다 터덜 터덜
그래도 오늘은 아침에 투석실 다녀왔다 예이
연락이 왔다. 이번주 토요일에 보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이번주는 피했으면 좋겠는데, 약간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한 주 미룬다고 유의미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야 이알아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왔으면
최소한 CT라도 찍고 거는 성의를 보여라
또 승질나게 하네 정말
2024년 6월 22일
독박주간 시작
자, 해보자
2024년 6월 19일
68 언저리에서 어정대던 체중이 일, 월 2일 간 탄수화물 먹었다고 69.5까지 올라가는 걸 보면서
숫자도 숫자지만 눈바디가 불어나는 걸 보면서 야 이거 큰일났다 위기감을 느끼고 탄수화물 컷팅을 하니
하루만에 다시 68인가 67.9인가 언저리로 들어오면서 가벼워지는 걸 느끼고 안도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길을 들이는 게 맞나 생각도 잠깐 들고
너무 안먹는다, 비리비리하다, 늙어서 고생한다 하며 관리한다는 사람을 보며 혀를 차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귓전에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저런 소리를 듣는 것인가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그런 소리들 듣는 것에 하나 하나 신경쓰고 있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불면 무거워지고
줄으면 가볍기는 한데
기운이 빠진다고 할까
slim and fit하면서 healthy한거는 대체 어떻게 찾는거냐
근육의 문제인가
그렇다고 이 상태에서 근육을 늘리는 게 맞는건가
(늘어나지도 않지만)
지난 주일부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 날들
어떤 의미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계 혹은 환멸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고개를 하나님께로 돌릴 수 밖에 없는…해법이 이래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되면서도
그러면서도 제대로 봤나? 하는 물음에는 아니…할 수 밖에 없는
게으르고 본능적으로 뼁끼칠 머리부터 돌아가는 나
괜찮아
뭐가?
그냥 다
그래?
그러고보면
저 앞에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지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빛을 내뿜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 무언가가
아득히 멀리 보이는 것만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어쩌지?
너무 작으면, 혹은 내가 생각한 그 빛이 아니라면
그래도 지금은 그냥 계속 가는 수 밖에
2024년 6월 17일
어제의 불편한 감정
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해부해보자
일단 내가 셀장인데 나보다 신앙의 선배들이 둘이나 있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내 뒤에 계신(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제대로 끌고 가지도 못하면서) 이에 대해 다른 종류의 부담을 느끼고
사실 이 감정은 짜증에 더 가까움…
왜 난 모든 걸 다 서열화시켜서 생각을 할까?
신앙의 선배님들은 좀 선배답게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짜증도 난다
그러다가 또 드는 생각이
세상이나 직장에서는 연수가 오래되면 그 자체만으로 감투가 되는데
이 세계에서는 오히려 더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사람이 되야 하니
그 사실이 참 엄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앙의 선배들이 아무리 시어머니 짓을 하려고 해도
내가 셀장으로서 모자람이 없게 바로 선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이 올라올 일도 없고
올라와도 큰 문제없이 핸들링할 수 있을텐데
결국엔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거기서 또 짜증이 난다.
써놓고 보니 짜증밖에 없다…
H와 이야기를 하면 항상 느껴지는 불편감이 있다
이 불편감은 나를 uncomfort zone으로 몰아내고
결국에는 성장을 도모한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출근을 해서 중간에 만들어진 신을 읽는데
아주 뼈때리는 챕터가 있다 (은혜 없는 복음은 가짜 하나님을 만든다)
요나 개인의 우상-하나님께 순종하기 보다 사역의 성공을 더 원함
요나를 빚어낸 문화적 우상-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니느웨 사람들의 영적 유익보다 이스라엘의 국익을 앞세움
요나의 종교적 우상-무조건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악한 이교도인 니느웨 사람들을 향해 우월감을 느낌, 그들이 구원받는 것을 싫어함.
‘은혜는 은혜이다. 아무도 참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으며 따라서 모두가 대등하다.
구원은 전혀 우리 쪽의 자격이나 공로에서 비록되는 게 아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 온다.’
(하도 여러번 들은 자명한 명제라 오히려 반복을 하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거를 대체 몇 번을 반복해야 진정으로 깨닫고 엎어질 수 있을까? 이걸 보면 나는 아직도 은혜를 거부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그러다 갑자기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온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했다고? 그 베드로를? 레알?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어쩌구 저쩌구’ 그거 아니야?
하면서 헐레벌떡 달려가서 보니 과연
저 본문도 안 읽은 본문이 아니었다. 다 보고 설교도 들은 본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가올 때가 있단 말이지
야…베드로도 같은 공동체 일원에게 책망을 당했는데 내가 뭐라고…
그냥 그러려니 하자
p.256-257 늪지대 이야기
‘하지만 마음의 밑바닥에 닿은 줄 알았다가 그게 바닥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평생 계속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바닥에 닿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믿기로 이 땅의 삶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계속 땅을 팔 줄을 알아서 점점 더 심연에 근접해 가는 사람이다.’
오늘 나의 독서가 지식교양 한 줄을 쌓고 흐뭇해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하루가 되길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나아질 수 있길
2024년 6월 14일
topic 1. 악몽
악몽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냥 수면위생이 불량한 환경에서 잠이 들면 개꿈을 꾸는 것 같다. 피곤을 풀려고 잠을 청했으나 정작 자는 내내 괴로움에 시달리다 만신창이 상태로 깨서(=_=) 꿈이라 다행이야…으어…하면서 현실을 마주하는 그 기분 뭐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_-) 개인적으로는 수면위생을 개선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루틴 정립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뭐 그럼. 그러다 이것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 아늘까? 하면서 느릿느릿 메모장을 채워보는 하루
topic 2. “너무 착해요!”
이 피드백 너무 당황스럽다 (-_-) 본격적 집단생활 (=초딩)을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내 인상이 진하고, 세고, 뚱해보이고 나는 가만히 멍때리고 있는데 다들 와서는 ‘뭐 기분 안좋은일 있어? 무슨 일 있어? 화났어?’ 물어보는 바람에 당황하기 시작했던 기억. 그리고 내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환이 있거나 화가 난게 아니라는 걸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은연중에 내보이는 여러 시도를 해보았던 시간들. 그리고 실제로 성격이 개차반이기도 했고. 초딩 6년의 생활기록부에 담긴 담임선생님들의 코멘트를 모아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얘는 똑똑하기는 한데 지 혼자 잘난 줄 안다.’ 독선적이라는 단어 적혀있었으면 말 다한거지 뭐. 사랑받고 싶었지만 제대로된 방법을 몰라서, 그리고 내가 그걸 모른다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줄도 몰라서, 그러면서도 남을 밟고 올라서서 상위권에 안착하는 데에서 안정감과 생존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추동해왔던 나의 어린 시절. 초중고대+대학원까지 스트레이트로 20년의 학생생활을 하는 동안 학업성취도 면에서 저러한 성품들이 어쩌면 일부분 강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다만 그런 말이 있잖은가.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같이 가라…혼자 빨리 가고 싶어가지고 남들 다 제끼고 보폭 크게 크게 벌려서 척척 걸어가다가 레이스가 후반에 갈수록 체력이 달려서 어느새 나를 앞서가는 (그러면서도 평화로운!) 이들을 목격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사람이란 게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이마아아아안큼 많다! 저들이 나의 존재를 허용해주길 바라면서도 나는 뒤에 있는 (앞과 뒤가 있다는 개념부터 없애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일단) 이들은 무시하고 깔보고 무가치하게 여겨왔다네. 아 이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끊임없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교정하려 애썼고, 내가 택했던 방법은 포장과 suppression, 다시 말해 inhibition이었던 것 같다. 머리 속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까지는 어쩌지는 못하지만 그걸 그대로 필터없이 내뱉었던 예전과는 달리 전두엽에서 inhibition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말이지…
그래서 inhibition을 열심히 해왔는데, 결정적으로 전공의 시절에는 말이야, 일은 많지, 몸은 힘들지, 마음도 힘들지,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지, 너무 힘들지 (동어반복 아님 주의), 그러니까 사람이 팩팩거리게 된단 말이지. 가능한 ‘친절한’의사가 되어 보려고 노오력을 했지만, 그 노오력이 되지 않는 때가 가끔 있단 말이지. 뭔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느릿느릿 시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 지금 당신보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되도 않는 권리 같지도 않은 권리를 주장하려고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어? 꺼져.’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VIP 좋아하시네 꺼져라 생각을 하면서 ㅈㄹㅈㄹ하는 부자들을 질시하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또 너무 눈까리를 있는 그대로 홉뜨면 곤란하니까 땅바닥을 내려다보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식으로 감춰보려고 하면서 이런 마음가짐이면 부자되기는 글렀군 스스로에게 한탄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어떻게 참아보려고, 드러내지 않아보려고, 감춰보려고 노오력을 하지만 가끔 그 베일이 벗겨질 때가 있었단 말이지. 그러면서 QI 실에서 메일을 두어번 받고 나면 세상만사와 인간군상과 이 병원과 이 시스템과 이 사회의 모든 것에 환멸이 느껴질 때가 있었단 말이지. 그러면서도 그 상황을 바꾸지도 못하고 떨쳐내지도 못하고 때려치지도 못하는 내 자신에게 가장 짜증이 나고 화가 났던 때가 있었단 말이지. 하루 하루 꾸역 꾸역 날들은 지나갔고,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서 날카로운 통증은 사라지지만 둔중한 감각이상은 한동안 남아있는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에 새겨졌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꿀꺽 삼키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노련하게, 혹은 교묘하게 자신을 감추는 법을 익혀왔단 말이지.
친절한 의사란 대체 뭘까. 국민 전체가 친절과 불친절을 가늠하는 잣대를 손에 들고 하루 종일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이밀면서 기준치를 채우지 못했다고 서로 닥달하는 것 같다. 버스 기사에게, 콜센터 안내직원에게,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에게, 자녀의 선생님에게, 은행 직원에게, 병원 접수처 직원에게, 그리고 의사에게. ‘선생님이 너무 쌀쌀맞아요, 불친절해요, 설명을 제대로 안해줘요, 눈빛이 차가워요, 고압적으로 명령하듯이 이야기했어요, 눈을 쳐다보지 않아요, 꼽을 줬어요…등등등’ 정말 따뜻한 마음이 넘쳐나서 무한정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 친절이라는 덕목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채울 수 있겠다. 좋겠다.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심장을 가진 로보트같은 인간은 별도로 행동과 말투와 눈빛을 강제로 뎁혀주는 가열기를 장착하고 단위 시간 당 상당한 에너지를 사용하여 미지근한 맹물같은 아웃풋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번에 들은 저 ‘너무 착해요!’라는 피드백은, 1) 아마 나의 저 겉을 치장하려는 노력이 오래되다 못해 조금 과하게 보정이 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2) 차가운 주제에 사람이 또 깡다구는 없어가지고 결과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흐물텅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라는 결론을 낳기에 이르렀다. 심지가 단단하고 곧으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싶다. 그거 어떻게 하는건가요. 돈 주고 사고 싶은데요 힝.
2024년 6월 13일
오…임차권등기 결정정본 떨어짐
8일 신청 10일 납부 11일 보정명령 13일 결정정본, 짱 빠른데?
확실히 전세사기가 판을 쳐서 그런지 모든 행정절차가 피해자 구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나봐
이제 임차권등기 경료 확인하고 집주인한테 서류받고 허그가서 신청하고…그러면 끝나겠다
Credit to God
2024년 6월 10일
며칠 간의 다시 명확한 메세지와 깨달음으로 해야 할 거는 알겠는데
clingingness가 있는 상태
한숨 푹푹
6/7)
하나님, 그럼 제 마음을 바꿔주세요
저도 제 마음을 어쩌지 못하니
제 마음을 바꿔주세요
준비해야할 서류를 쭈욱 훑어보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아, 생각이 드는 오늘
다른 건 몰라도 내용증명만 기일 전에 일찍 보냈으면 수고를 조금 덜 수 있었겠는데 싶지만
뭐 어쩌겠어 이제 와서 에너지가 생긴걸
야 경험치 획득했다 -_-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비슷비슷한 골골골 할머니들에 이젠 만성염증 상태인 내 자신을 너무 확연하게 느껴버리고
무념무상 티벳여우 상태로 좀 보져 하고 돌아서는 반복
그러다 가서 들은 ‘환자도 보호자도 연락이 안돼요’ 소리에 번뜩 스쳐지나가는 안좋은 예감
예감은 현실이 되고
그래도 잘 때 한 번에 가셔서 다행이다
잘 가세요
한 명이 가고 한 명이 온다
이것이 삶의 법칙
나는 또 한 켠에 서서 순례객들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지나가는 발걸음들
2024년 6월 7일
하루종일 일하면서 중간중간 임차권등기/공시송달/내용증명/이행청구 등등등 같이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 시간 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같이 볼 수 있는 환경인게 어디냐…
내 집주인은 그래도 전화는 받고-_-
파산신청 하지도 않았고-_-
감옥에 들어가지도 않았고-_-
집이 경매에 넘어간 것도 아니고-_-
이것만 해결되면 집 관련해서는 좀 숨 돌릴 수 있겠다
내가 세들어 사는 집 + 내가 세놓는 집 두 개가 짬뽕이 되어서 이번 기회에 부동산에 대한 일말의 장밋빛 호시탐탐 곁눈질 같은 건 싹 다 사라졌다 ㅋㅋㅋㅋㅋㅋ
쳐다도 보기 싫다 웩…
나는 의지력이 매우 낮은 사람이고 뭔가를 일으켜서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사람인데
꾸역꾸역 해내려니 쉽지 않다
씸뽈…해지고 싶다
일단 이 집에 들어오는 게 주님이 뜻이 아니었다는 건 이제 누구보다도 자알 알겠고-_-
무사히 이행청구를 완료하고 나가기까지 은혜가 필요한데
나는 저 은혜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아직도 껄끄럽고 탁 걸린다
은혜…은혜라…
그냥 인간이 싸질러 놓은 똥을 으이구 이놈아…하시면서 치워주시는 게 은혜인건가?
주의 은혜로 어쩌구 저쩌구가 잘 해결되었다, 너어무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또 내가 지금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런가? 그것 뿐인가? 그러면 되는건가? 그래도 되는건가? 하는 검열이 따라온다
그래도 방법이 이것뿐이니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그점이 매우 짜증나기는 한다
너덜너덜해진 정신머리와 몸을 이끌고 금요예배를 가는 길은 고단하다
털썩 앉아서 입만 겨우 뻥끗거리는 찬양시간은 고역스럽다
찬양시간에 한 숨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예배시간에는 까딱하다 졸지 않으려고 기를 쓰기 바쁘다
집에 가고 싶다…생각을 억누르고 예배 후 기도를 드리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 와중에 몰입과 임재를 구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가짐에도
찾아와 주시려나
2024년 6월 6일
휴일, 작정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나가볼까 생각도 안하고 집에서 충전만 하는 하루
이제는 너무 오래 자면 허리가 아프고 기분이 나쁘다 적당히 자고 일어나야지
그리고 경험 상 일어날 시간을 지나서 자고 있을 때 꾸는 꿈은 개꿈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오늘 베란다 (베란다 테라스 맨날 헷갈린다-찾아보니 저건 베란다가 맞았다) 치웠다 숙원사업 해결-_-v
안타는 쓰레기 봉투 겁나 비싸고
플라스틱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내다놨는데 수거 해갈라나 걱정이 되고
큰 화분과 죽은 나무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처치곤란이라 당근의 힘을 빌려서 해결했다
이렇게 해서 업보청산이 끝났다
이럴 때마다 뭘 사고 뭘 들이는 거에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스려보려 하지만
그게 잘 되면 내가 지금…-_-;
2024년 6월 5일 -2
기도의 응답-중요하니까 따로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6b)
→나의 매인 것을 풀어주실 수 있는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
2024년 6월 5일
이때 특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괴테의 “체념(resignation) 철학”을 모리는 일평생 지침으로 삼았는데, “주체와 대상간의 억압적인 분리를 극복하는”, 그리고 “단념하는 것이 괴롭고 불만스러울지라도 그에 맞서는 태도로서의 태연함을 견지하는” 괴테식 체념을, 모리 본인의 삶에서 맞닥뜨린 여러 고뇌와 굴욕에 대응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에 크게 참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집필한 소설의 주제로도 곧잘 다루었다. 그리고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를 일역하여 출판하였고,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 5가지를 본인의 작품에 인용하였다.
-모리 오가이 나무위키
잡을 수 없는 것을 목을 빼고 바라보느라 고달파지고 허해질 때쯤에는
시선을 거둬 나를 마주보는 것만큼 위안을 주는 게 없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메모장을 열어 그동안 두서없이 적어놨던 조각글들을 열어본다
계속 열심히 적어야겠군 생각한다
4월 29일의 일기를 다시 읽었다. 여기에 옮겨두지 않은 것 같아 붙여놓고 오려고 한다.
저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저 장면이 전만큼 잘 떠오르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So, what’s next?
오늘 알게 된 사실 : 수요일에는 상당수의 미술관이 문을 닫는다.
아 그걸 쓰는 걸 까먹었다 중요하니까 복기해서 기록
소통이 예전보다 조금 더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단은 믿어보기로 한다. inclusion criteria를 조금 더 느슨하게 잡아보기로 한다.
궁극의 목적이 나의 위안을 위해서만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모두의 영혼의 구원을 향하여라는 방향만 잘 잡고 있으면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잡아도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새 조금 더 많이 울컥하고 자주 눈물을 흘리게 된다
괜찮다 어차피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니까
이럴 때는 이게 편하다
와 이거 뭐야 하고 발견한 오늘의 아티스트 : 막스 리히터
알고보니 컨택트 음악도 이 아저씨 작품이라고
사계 봄 -1 듣다가 울뻔했다
voice 앨범은 멋지다 근데 사실 10분 정도 들으면서 자다가 깨서 끄고 다시 잤다 ㅋㅋㅋ
sleep 앨범은 내일 마침 쉬는 날이기도 하니 한 번 시도해볼까…
2024년 6월 4일
기도를 했지
모든 옭아맴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말이야
내가 지상의 다른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오로지 당신에게만 매이게 해달라고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는 자유롭게 해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서
끝끝내 나의 일부를 놓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그자리에 남아만 있었네
가야 하는데, 버려야 하는데, 떠나야 하는데
이제 길을 나서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
먼저 버리고 가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건 마음이 먼저 떠나버리는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나봐
그렇다면
마음이 떠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도 않게 되고
점점 시선이 옮겨가고
마음이 멀어질 때쯤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저곳으로 가고 없을 것이라고
남은 것들이 불쌍해서 떠나지 못했다고 말하기에는
나만 떠나면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그렇게 기도했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의 이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았어
반쪽짜리 기도는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까
서서히 서서히
쪽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처음 얼마간은 슬퍼하다가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부 잊어버리고 몸을 돌려 반대편을 앞이라고 정하고 바라보겠지
또 거기서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겠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회한도 슬픔도 아쉬움도 괴로움도 남지 않은 채로
그랬었나, 왜그랬지 싶을 정도로 홀가분하게 웃을 수 있기를
이제는 모두 괜찮다고 아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그렇게 될 수 있기를
2024년 6월 3일
판독도 받아놓지 않고 협진부터 걸어버리는 이알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을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까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빡침을 더 통과해야 할까
주말 사이 고열이 났던 할머니는 배에 가스가 가득 차가지고 곧 터질 것 같고
나는 또다시 환자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는 마음으로 안달이 나 있다
카톡에 ‘요새 날씨 미쳤네’라고 누가 그런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건 아니니 저 미쳤다는 말은 겁나 좋다는 말인텐데
나는 어쩌다가 낮시간 동안 하늘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에 와 있게 되었네
블라인드를 빼꼼 걷고 고개를 모로 올려 하늘을 바라보니
과연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구나
구름이 한 점 보이지 않아 더 아득하고 시린 것 같아
난 구름이 있었으면 좋겠어
약간은 아쉬운 마음으로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다시 컴퓨터 앞에 와 앉아있으려다가
뭔가를 본 것 같아 다시 들춰봤어
반대편 창문에 구름이 비쳐 보이네
예쁜 구름이야
좋은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