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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음하는 바람처럼

    신음하는 바람처럼 -헤르만 헤세 신음하는 바람이 밤을 날리듯나의 갈망이 너에게로 날아간다모든 그리움은 눈떠 있다오, 나를 이렇게 시름케 하는 너는나의 무엇을 알고 있는가! 밤늦게 조용히 불을 끄고열정에 차 몇 시간이고 뜬눈으로 있다밤은 어느덧 네 얼굴이 되고사랑을 속삭이는 바람소리는지울 수 없는 네 웃음이 된다

  • 별의 역사

    별의 역사예브게니 옙투셴코(최선 옮김)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사람의 운명은 별의 역사와도 같은 것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하고 비범하여서로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가 눈에 띄지 않게 살았다면눈에 띄지 않는 것에 친숙해졌다면바로 이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하여그는 사람들 가운데 흥미롭다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이 세계 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이 세계 안의 가장…

  • 스푸트니크의 연인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행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 삼아 회전을 계속하는 것일까?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 채 지구의 인력을 단 하나의 끈으로 삼아 하늘을 계속 돌고 있는 스푸트니크의…

  • 창작의 샘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누구나 샘은 다 있는 것 같기는 한데내 샘은 나에게 충분한 것 같기는 한데나의 것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어보이고저기 보이는 저 사람의 것은크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풍성한 것 같아끊임없이 맑은 물이, 푸른 빛깔이던가, 그러다가 햇빛에 영롱하게 반짝이기도 하는 물이쉬지도 않고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아서그 옆 돌에 낀 이끼도 왠지 예뻐보이고그 옆에 작은 들꽃의…

  • 사랑과 진실의 인생론

    나는 서른 일곱 살 때에 결혼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하기에는 아찔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는 인생의 초년기가 아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의 바탕이 정해졌을 때, 그런 삶의 방식에 동조하는 상대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경험으로 미루어 친구이든 연인이든 서신교환이란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교제형태라고 생각한다. 멀리 떨어진 채함께…

  • 언젠가는

    누군가 내 심장을 가져갈텐데나도 그이의 심장을 가져올텐데언젠가는 심장의 일부를 가진 채로 둘 중에 하나가 떠나버릴텐데그렇게 되면 남은 이의 심장이 고장날텐데겨우 뚫려있던 혈관이 마저 막혀버릴텐데혈관은 멀쩡해도 일부가 뛰기를 거부할텐데그렇게 심장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채로 남은 생을 살다가 가게 될텐데

  • 부표와 다리

    부표는 떠다닌다 그나마 부표가 흘러 떠내려 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부표를 잡아주는 줄이 있기 때문이다   다리는 굳건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 다리를 굳건히 지면에 뿌리박아 내렸기 때문이다   부표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부표는 고달프다   다리는 굳건하기에 자신의 큰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다 위에서 아무리 많은 차들이 좌우로 통행해도…

  • 토머스 머튼의 단상

    계곡은 이렇게 잠에서 깨어난다. 새벽 2시 15분, 수도원에서 나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종이 올리고, 성무일도가 시작된다. 밖에는 황소개구리가 개울이나 손님 숙소 연못에서 ‘옴’ 하고 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날 밤에는 황소개구리가 삼매경에 빠져 있다. ‘옴’ 소리조차 없다. 요즘에는 쏙독새의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가 아침 3시경에 시작된다. 그 새는 언제나 가까이…

  • 언젠가 이 모든 날들이 지나고놓임을 명 받았을 때내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으면서어깨를 죄고 있던 옷이 풀리면서멍에가 풀리는 것을 알아차릴 때그때야 비로소아, 이 옷이이렇게나 무거운 것이었었군요.입고 있었을 땐 몰랐는데굉장히 무거웠었네요.이 무거운 옷을 입고어린아이가 잘도 어른 행세를 하고 있었네요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면서요아마 다 보였을 거에요그래서 너른 이해로 다들 감싸고 넘어가준 것이겠지요.이제 전 가벼워졌어요.그러면 나는 다시 아무 것도…

  • 일을 맡은 자의 함정

    일을 맡은 자는 ‘일을 맡은 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함정은 매우 교묘하고, 또 빈번하게 파여있어서, 매일 매순간 조심하면서 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푹 파인 구덩이에 발이 빠지기 십상이다. 먼저 효능감이 찾아온다. 내가 무엇인가 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나의 맡은 역할이 있고 내가 그것을 차질없이 해나가고 있다는 효능감. 그것이 어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