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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과 두부
접수에 익숙한 이름이 떴다. 화목토 투석환자다.일주일에 3번, 정말 가족보다도 얼굴을 더 자주 보는 사이인데이렇게 부러 외래에까지 찾아온다는 건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다. 긴장하게 된다.빼꼼 내밀은 고개로 열리는 문을 맞이하니 손에 음료수 박스를 들고 계신다. 일단 안심한다. 경계태세 해제. 환자는 70대 할머니, 보호자는 남편우리 투석실에 사랑꾼 남편 투톱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다.아랍-두부 이론이 여기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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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생각한다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있으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먼 길에 먼지가 일 때깊은 밤, 좁은 다리 위에서방랑객이 비틀거릴 때나는 너를 본다 희미한 소리의 파도가 일 때이따금 모든 것이 침묵에 쌓인조용한 숲 속에 가서나는 너를 듣는다. 너와 멀리 있을 때에도, 나는 너와 함께 있다.너는 나와 가까이 있기에태양이 지고 별이 곧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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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is thy faithfulness
그 일이 있었던 게 대학교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때가 어두웠던 게 저녁 때라 그랬던 건지, 겨울날이라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어두워서 모든 장면을 어둡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어두웠던 나의 대학시절 언제쯤이었다고 범위를 많이 넓혀보면, 대충 들어맞을 것입니다. 아직 알고리즘이 지금처럼 치열하고 교묘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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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법칙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존경할지, 특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구를 닮고 싶은지와 관련해 더 현명한 통찰력을 갖추는 일이다. 나발 라비칸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부러워하는 인물들을 떠올리며 그들 삶의 좋은 부분만 골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의 몸매만, 저 사람의 재력만, 또는 이 사람의 성격만 갖고 싶어 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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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언젠가 여건이 되면 화장실이건 안방이건 벽 한 쪽을 검정으로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아니고 오로지 새치를 잘 분간하기 위한 배경이다. 그러다가 그 여건이란 게 만들어질 때 쯤이면 흰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아져서 그럴 필요도 없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머리가 하얗게 세버린 나를 만나게 되리라. 그건 괜찮다. 고역스러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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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여기서 무엇을 봤나요?당신은 무엇이 보이나요?나는 파국이 보여요처참한 끝이 보여요끝나지 않아, 끝낼 수가 없어 더 비참한 끝이 보여요우린 이것을 진행시킬 수도 있고, 여기서 멈출 수도 있어요여기서 멈춘다면얼마간은 허하겠죠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거에요진행하기로 결정한다면한동안은 즐거울거에요매일이 재밌어지겠죠서로가 각자에게 없는 상대방의 자질을 발견하고감탄하고찬탄하고찬양하고숭배하겠죠당신은 나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될거에요나는, 글쎄요. 당신에게 무엇이 되줄까요하지만 오래지 않아그것들은 모두 빛을 잃을거에요매일의 삶이 끼어들어오겠죠처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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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벽돌
제 매일의 일상은 회색벽돌과 같습니다.회색이라고 해서 암울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붉은벽돌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고톤다운된 회색이 주는 진중하고 차분한 이미지가 저랑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하루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낸다면, 글쎄 벽돌 한 5장은 받는 것 같아요그러면 저는 왼손에 벽돌을 들고, 오른손에 든 (그 도구를 뭐라고 하드라?) 아무튼 그걸 가지고 옆에 있는 통에서 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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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세상
가끔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아두면 좋으니까 한 번 찾아볼까’ 하고 영단어를 검색했다가 놀라는 경우가 있다. 내가 알고 있던 뜻과 전혀 다른 뜻이 1번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내가 알고 있던 뜻을 허겁지겁 찾아 시선을 밑으로 내려보면 가끔 2번, 대개의 경우 3번에 그 단어가 있고는 했다. aspiration이 그랬고 differentiation이 그랬으며 vessel이 그랬다.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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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과 보석
Too muchBeyond my capability 두 가지 의미로 이 일이 나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하는데혹은 내가 이 일을 하기에 아직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는데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있다 나쁠 때는내 앞에 거대한 벽을 마주한 느낌이다다시 보니 이건 벽이 아니다거대한 계단이다사실 그렇게 높은 계단도 아니다그냥 계단 한 칸일 뿐이데내가 너무 작고 쪼꼬매서계단이 거대해보이는 것 뿐이다눈 앞에 벽이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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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ork
My work essentially involves maintaining balance, you know, the equilibrium. It’s called ‘homeostasis’. As you may have heard before, it is not a fixed or static status. Our body constantly changes its status, responding to signals and demands from within and outside of us. It’s not about just one parameter; there are multiple different th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