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

  • 욕망은 명확하다

    욕망은 명확하다 내 이름 석 자를 박은 책이 가지고 싶다는 것 서점에 가서 매대에 깔린 (꼭 매대에 깔려야 한다. 존재감 없이 책장 한 구석으로 가서 처박힐 것이 아니라) 내 책을 남몰래 구경하고 쓸어보는 것 그러나 책장에 수없이 꽂혀 있는 그 책들이 이미 면면이 대단한 책들인데, 뽑아서 뒤적거리다보면 아 이 책도 좋은 책이구나, 발견과 깨달음을 얻고…

  • 해마다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곧 저 꽃들이 지고 잎사귀가 나무를 가득 메운 때에도 저게 개나리고 저게 벚꽃나무고 저게 목련임을 기억하겠다고 번번히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나는 또다시 그 나무와 그 덩굴이 이렇게 이뻤다는 사실을 홀랑 까먹고 일년의 열 한 달을 보낼 것이다. 봄이 오기 바로 직전 겨울에 제일 못생겨져서는…

  • 소극장

    정녕 해법은 없는 것일까? 항상 이렇게 피곤하고 지친 몸을 끌면서 겨우 겨우 살아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이게 정말 최선일까? 그 모든 것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모두 1인 주연의 소극장에 관객으로 앉아있다. 관객도 나, 감독도 나, 연출도 나, 주연도 나다. 연극무대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훨씬 잘났다. 이런 허무맹랑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 나를 이 이상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나를 깊은 산에 데려다 주소서. 마실 물과 먹을 채소를 주시고, 그들이 자랄 땅을 허락하소서. 햇빛을 주시고 때에 따라 단 비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나의 삶엔 관여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대로 죽은 듯이 조용하게 하루를 살아가다가 내 생을 마감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영향을 받지 못할 것이며 나 또한…

  • ER-2

    전 시즌을 다 모을 생각은 없다. 시즌 1이면 충분하다. 세월의 때가 빗겨가질 못해 겉 종이 케이스가 여기저기 해지고 색이 바랬지만 이정도라도 보존되어서 지금 내게로 온 것이 감사하다. (상태가 매우 좋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그리하여 혹시 누군가가, 이것은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을 때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야기이나 나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그때…

  • 우리에겐 각자의 그늘이 있지

    우리에겐 각자의 그늘이 있지. 나는 그 그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그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슬픔과 어두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어쩔 때는 이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어쩔 때는 무용한 어둠뿐일지라 사라지기를 간구하여야 하나 고민하였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나만의 고유한 역사이기에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고도 생각했었다.…

  • 시3

    그러나 이제 그 날들은 가고 없고 여기 내 영혼의 한 조각을 두고 가니 희미하게 흩어져가는 흔적들을 붙잡으려 애쓰다 보면 나는 괜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허망하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라고 이렇게 조용하고 느슨하나 그러므로 단단한 연대를   불뚝대며 뛰는 혈관을 보았다 용트림을 하며 뛰는 그것은 지름이 족히 3센치는 되어보였다 6센치가 넘어가면 저것도 파열 가능성이 높아지려나…

  • 시2

    미세먼지 가득하던 2017년의 글을 읽다가 그러고보니 요새 미세먼지 이야기가 없지, 하고 생각해보다가 어쩌면 신께서 이 와중에 미세먼지까지 주면 애들이 미쳐버릴까봐 조금 배려해주신 게 아닌가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려다가 나는 또 아니야, 코로나 때문에 인간들이 비행기도 안 타고 공장도 덜 돌려서 그런거라고 내 안의 냉소적인 과학자가 이야기한다 신앙은 절대적인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

  • 2020년 7월 4일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하던지 이 끈을 놓지 말고 계속 붙잡고 이 산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일종의 숙명이자 과제 같은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가 되고자 열망하였으며, 현실 속에서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애썼고, 그 분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나의 욕망을 투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참을성도 무한하신 그 분께서는 나의 욕망을 나무라거나 기각하지 않으시고 용납하셨다. 그렇게…

  • 슬픔이 나를 덮칠 때

    슬픔이 나를 덮칠 때 – 슬픔이 나를 잠식할 때 집어삼킬 때 – 슬픔이 나를 떠날 때 – 높은 곳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기를 그치는 그 때에 – 그대 나의 구원이 되라 – 그대 나의 위로가 되라 – 자세가 곧고, 어깨가 굽지 않았으며, 옆선이 아름답고, 눈빛이 선하며, 고결함까지 느끼게 하는 그리하여 그를 가질 수 있었고 선한 마음으로 무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