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버려 두십시오. 나를 이 이상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나를 깊은 산에 데려다 주소서. 마실 물과 먹을 채소를 주시고, 그들이 자랄 땅을 허락하소서.
햇빛을 주시고 때에 따라 단 비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나의 삶엔 관여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대로 죽은 듯이 조용하게 하루를 살아가다가 내 생을 마감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영향을 받지 못할 것이며 나 또한 그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을 것입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고 슬퍼하는 사람도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다만 내가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나의 집 울타리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떠다니는 구름을 향유하고 내리쬐는 햇살아래 낮잠도 자다가 그렇게 나의 하루가 마감되게 하소서. 왱왱거리는 날파리도, 내 살을 물어 뜯는 성가신 모기 따위도, 밤을 위협하는 산짐승도 내가 만든 이 그림 같은 집에는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신이시여, 나에게 귀찮은 것이나 위해요소 같은 것은 없는 환상스러운 거처를 마련해주소서. 매일이 매일 같고, 내일과 어제가 다르지 않은 평온한 나날을 허락하소서. 제발 부탁이니 신이시여,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아, 그러나 나는 인간인지라 눈을 뜨면 입만 있는 아귀처럼 입을 벌려 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치워야 하고, 내 안에는 끝 모를 깊은 어둠이 있는데 그 어둠의 입구는 나의 입입니다. 나는 공허이니 모든 것을 빨아들여야 하고, 눈에 보이는 새로운 것들 빛나는 것들 아름다운 것들 것 내 소유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숨을 쉬어야 하니 당신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행성의 값비싼 산소를 허비하고는 쓸모 없는 역겨운 것들만 배출해 내지 않습니까. 나는 먹으면 배설을 해야 하니 그 또한 당신의 이 아름다운 창조물을 더럽히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지금 내 생을 거둬가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이시여, 차라리 그렇게 하시지요. 아, 생각해보니 지금은 아니되겠습니다. 나를 짓누르는 이 부채가 해결된다면, 그 때 나를 조용히 데려가시지요. 세상에 어떠한 빚도 남기고 가고 싶지 않으니 그렇게 하십시다. 최소한 세상에 민폐나 끼치고 가는 덜떨어진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단 말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세계 경제를 좀먹다 간 기생충 같은 인간으로 남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내 부채를 해결할 만한 돈을 주시고 나의 정산서가 모두 지불되고 난 뒤 나를 데려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