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4일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하던지 이 끈을 놓지 말고 계속 붙잡고 이 산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일종의 숙명이자 과제 같은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가 되고자 열망하였으며, 현실 속에서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애썼고, 그 분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나의 욕망을 투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참을성도 무한하신 그 분께서는 나의 욕망을 나무라거나 기각하지 않으시고 용납하셨다. 그렇게 절실하고 간절히 원하던 것이었는데, 이제 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내 손으로 놓아버리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내 손으로 놓지만은 말아야 한다. 언젠가 그 분의 뜻에 따라 내가 이것과 이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라도, 그것이 멍에에서 놓임을 받는 것처럼 기쁠지라도, 그 때가 언제일지, 혹은 내가 떠남을 슬퍼하며 받아들이기 주저할지라도, 그 때가 언제인지 정말로 진실로 나는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지금은 내게 허락된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이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이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내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라, 지상의 현실에서 이것에 대한 지위를 상실하는 순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의 어느 한 부분이 꺼져버린다. 그것은 스위치를 내리면 꺼지는 전구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상실이 너무나도 깊어 한순간에 영영 잃어버리기도 한다. 혹은, 잃은 그 순간에는 후련하고 속이 시원하며 날아갈듯이 기쁘다가도, 꺼진 불이 오래되면 두 번 다시 그 불을 켤 스위치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무엇인가가 꺼진 채로, 상실된 채로, 영혼의 한 부분이 온전하지 않은 채로 남은 생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창조주의 크신 섭리 안에서 그 분의 뜻하심을 따라 순복하는 과정이라면 차라리 낫겠으나, 스스로가 그것을 버리고 떠나는 순간 그 불빛은 꺼져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한 과정 중에는 많은 것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높은 곳을 우러러보며 괴로워하기를 그치는 그 때에, 어쩌면 눈을 가리고 잠시 평안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인가가 죽어버린 채로, 들어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이, 그저 생을 연장시키기 위하여 아침에 눈을 뜨고 입에 무엇인가를 넣고 씹고 삼키고, 그 후에 그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들어와서는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런 가운데서도 너는 네 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 주기를, 그래서 이 현실을 바꿔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텐데.

왜 그렇게 많이도 슬프고 힘들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이 아래에는 그저 고요한 어둠만이라고 답해 주리라. 만일 그곳에 기쁨만이 가득하다면 상실 후에는 색채도 기쁨도 잃어버린 채로 침잠하며 생의 마지막을 재촉할 뿐일 것이라고. 색채 가득한 그곳에서 슬픔이 있다면, 어쩌면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 내려온 회색 도시에서 잠시 잠깐의 기쁨과 평안, 휴식과 안온, 위로와 회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니라면 그건 또 어떠랴, 미쁘신 그 분은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실 테니, 나는 그저 한 오라기 실 같은 믿음으로 이 일을 계속할 뿐일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