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왜 슬픔이 어중간한 미결 상태처럼 느껴지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습관으로 굳어진 수많은 충동이 좌절되기 때문이다.
나의 수많은 생각과 느낌, 수많은 행동들은 H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 그 목표물이 사라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활에다 화살을 메기지만, 다음 순간 목표물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활을 내려놓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길들이 H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나는 그 중 하나를 택한다.
그러나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경계 표지판이 길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다.
한때는 그렇게 많은 길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많은 막다른 길로 변해 버렸다.
슬픔이 짓누르는 시간,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다른 모든 도움이 헛되고 절박하여 하나님께 다가가면 무엇을 얻는가?
면전에서 쾅 하고 닫히는 문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떠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가져가 버렸는지 아오?
당신은 내게서 나의 과거조차 앗아가 버렸소.
우리가 함께 하지 않았던 과거마저도.
예기치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오늘 아침 일찌감치 일어난 일이다.
그 자체로서는 전혀 신비로운 일도 아니건만, 여러 가지 이유로 내 마음은 몇 주 만에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다.
우선 한 가지는 내가 기진맥진해 있던 탈진 상태로부터 육체적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아주 고되지만 매우 건강한 12시간을 보낸 후 훨씬 달게 밤잠을 잘 수 있었다.
게다가 열흘 동안 낮게 걸려 있던 잿빛 하늘과 움직일 줄 모르던 후텁지근한 습기가 걷히고, 태양이 빛나고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H에 죽음에 대해 여지껏 가장 덜 슬퍼한 그 순간 불현듯, 나는 그녀를 가장 선명하게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