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샘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누구나 샘은 다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내 샘은 나에게 충분한 것 같기는 한데
나의 것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어보이고
저기 보이는 저 사람의 것은
크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
풍성한 것 같아
끊임없이 맑은 물이, 푸른 빛깔이던가, 그러다가 햇빛에 영롱하게 반짝이기도 하는 물이
쉬지도 않고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아서
그 옆 돌에 낀 이끼도 왠지 예뻐보이고
그 옆에 작은 들꽃의 초록 잎마저 부러워서
그게 나도 가지고 싶어 미치게 부러워지면서

샘을 돌보지 않았던 나의 잘못인건가
사느라 바쁘다고 입구를 막아놓았던건 아니었나
아니 어쩌면 그때의 나는 그래야 했던 것만은 아닐까
그 샘의 입구를 막아놓고 다른 것에 집중해서 살아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입구를 틀어막으니 편했어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이 실과 저 실 사이에서 손가락을 헤매지 않아도 되었었지
그것말고도 잠 못 이룰 이유는 많았으므로

아니 어쩌면,
내게 샘이 있다는 사실이 버거웠던 것일지도 몰라
작고 하찮은 것들을 경멸해
나의 샘은 빈곤하고 너저분하여
이런 것 따위 차라리 없는 게 더 낫겠다고
작은 나를 꺾어서 지워버리고
될 일에 집중하는 게 더 편하겠다고

작은 식물을 들여서 큰 나무로 키워내는 것 따위
그런 성실하고 멋있는 일 같은 거 난 못해
그러니 그냥 없던 일로 하는 게 낫겠어
그리고 누군가가 몇 년 간 공들여 키워놓은 나무를
큰 돈 주고 업어오는 거지
그것이 나에게 맞는 방식
그래서 그렇게 살아왔어

그래도 샘에서 끊임없이 뭔가는 새어나오고
돌아보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그곳에서 물줄기가 쫄쫄쫄 흘러나와서는
어느 새 여기 멀리까지 나와 있는 내 맨발을 가만히 건드리고
나는 문득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발뒤꿈치를 무심히 흘쩍 보다가
어, 이게 뭐지 하고 시선을 뒤로 들어 흘러나온 물줄기를 따라가보니
저기 내 샘이 있었네
오래 버려두었던 나의 샘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발바닥에 싸락싸락 닿는 잔디의 감촉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고개를 길게 빼서
바라보면
있었는지도 몰랐던 큰 나무 앞에서
돌무더기 몇 개로 틀어막혀서는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는 물줄기들

양 발을 넓게 벌리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서는
걷어붙인 양 손으로 돌을 들어서 으잇-쨔
내가 이렇게 많은 돌로
여기를 틀어막고는 떠났던가
길 가던 누군가가 돌무덤을 보탰던가
아니면 그게 그 누구도 아닌
이제까지의 수많은 나였던가

쓰레기도 먼지도 이끼도 모두 탁탁 다 털어서
걷어내고 보면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별 것 없는 나의 샘
흘러나오는 물의 양도, 색깔도
똑같이 볼 것 없는 나의 샘

이제 이 옆에 누워볼까
팔베개를 하고 나무에 기대어 누워볼까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서 흘러나오는 물을 바라보고 있어볼까
햇살은 바로 받지 않게 나뭇잎 그늘 아래가 좋겠어
그러다 기력이 나면
주변에 쌓인 흙도 좀 파서 정리해주고
작은 돌도 구해다가 둥글게 입구도 만들어주고
흘러나오는 물도 다시 바라보다가
그렇게 있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