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 일곱 살 때에 결혼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하기에는 아찔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는 인생의 초년기가 아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의 바탕이 정해졌을 때, 그런 삶의 방식에 동조하는 상대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경험으로 미루어 친구이든 연인이든 서신교환이란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교제형태라고 생각한다.
멀리 떨어진 채
함께 앓아 누워 있으면서
편지 쓸 때 화장하는
그 버릇은 언제부터 들었던가
나도 그이와 함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한 그이에게 편지를 쓸 때 나는 늘 정성들여 화장을 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조용히 그이의 편지를 꺼내서 되풀이 읽고 또 답장을 하였다.
좋아한다든가, 싫어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항상 문제로 삼았던 것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편지의 테마였다.
또 서로가 읽은 책에 관하여 독후감을 서로 발표한 두 사람의 노트를 우리는 갖고 있었다. 상대방이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 읽었는가를 아는 것은 피차 매우 유익하였다. 우리들의 연애는 구도(求道)와 배움의 터전이기도 했다.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한번 더 인식하고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편지로 쓴다는 것은 말로써 주고받고 하는 것보다 더한층 자신과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서로의 이야기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어 서로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청춘이란 자기연단에 의한 자아발견의 시기이다.”
라고 어떤 철학자는 말하였다. 서신교환을 통하여 우리의 자아를 발견하는 바탕이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미우라 아야꼬, 사랑과 진실의 인생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