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곧 저 꽃들이 지고 잎사귀가 나무를 가득 메운 때에도 저게 개나리고 저게 벚꽃나무고 저게 목련임을 기억하겠다고 번번히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나는 또다시 그 나무와 그 덩굴이 이렇게 이뻤다는 사실을 홀랑 까먹고 일년의 열 한 달을 보낼 것이다. 봄이 오기 바로 직전 겨울에 제일 못생겨져서는 을씨년스럽게 옹숭그리고 있는 빈 가지, 쓰레기와 그렇게 멀어보이지 않는 개나리 덩굴들에 다시 꽃이 피고 잿빛 햇살이 분홍빛으로 바뀌면 나는 또다시 새삼스럽게 반쯤은 기쁘고 반쯤은 슬픈 마음으로 그 꽃들을 바라볼 것이다. 꽃들은 반짝 피었다가 금방 지고 마는데 그게 안타깝고 아쉽지 않냐는 우문에 돌아온 현답 (그때에는 또 그 계절의 꽃이 핀다)을 듣고 나서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