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여건이 되면 화장실이건 안방이건 벽 한 쪽을 검정으로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아니고 오로지 새치를 잘 분간하기 위한 배경이다. 그러다가 그 여건이란 게 만들어질 때 쯤이면 흰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아져서 그럴 필요도 없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머리가 하얗게 세버린 나를 만나게 되리라. 그건 괜찮다. 고역스러운 건 중간을 견뎌내는 일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이라고 쓰고는 ‘오래‘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 생각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몰라! 하는 내 안의 검열관이 글자를 지우게 만들었고, 아니 그건 그런대로 괜찮지만 그래도 젊음은 좋은거니 가능한 오래도록 머무르게 붙잡아보자 하는 내 안의 뻔뻔한 내가 ‘오래’라는 글자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근데 뻔뻔함은 나이와 함께 자라나는 것 아니었던가? 어허허허허…
새치가 초등학교 때부터 났기 때문에, 가끔 가다가 눈에 너무 띈다며 흰머리를 뽑아도 되겠냐는 조심스럽고도 사려깊은 물음이 익숙하다. 새치는 참 신기하게도 머리를 많이 쓰면 더 많이 난다. 어느 날 보다가 요새는 좀 없네? 싶으면 분명 대가리 꽃밭으로 지낸지 좀 된 것이다. 요새 살만하구만? 스스로를 파악한다. 그러다 골머리 앓을 일 또 닥쳐오고, 몇 달 뒤 새치는 또 부쩍 늘어나 있다.
이놈의 새치 다 없애버릴거야 으아아아아 피크와 알게 뭐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되 새치가 나면 나는 거고 말면 마는거다 하는 초탈인지 극도의 귀차니즘인지 모를 골짜기가 반복되는 나의 계절들. 모든 염원과 사고는 사인코사인 곡선을 그리는데 줌아웃을 하여 멀리서 보면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며 나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로 가고 있나 나의 별들의 궤적들이여.
중간계의 늪을 지나는 이 시점이 나는 괴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으면 나았을지도.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채로 기한이 지난지 한참이지만 안간힘을 쓰고 아닌 척 하는 이 모든 것이 질릴 정도로 싫을 때도 있다. 어쨌든지 명시적으로 요구받은 적은 없으나 스스로와 사회가 만든 기준에 맞춰 나는 아직 시장에 나와있는 유효한 상품이다라는 것을, 그 가치를 증명해보여야 하는 것이다. 정육점 빨간 조명 아래 걸린 지 오래된 고기덩어리 같은 느낌. 시간이 지나 겉면의 수분이 말라 비틀어지는 게 눈에 보이지 않게 주인이 기름을 발라준다. 이를 악물고 아직 팔릴만한 상품이라고 써붙인 고기덩어리. 구역질이 나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신나간 또라이인지 반푼이인지 인생 중대사를 나와 함께 꾸려나가겠다고 결심을 하고 손을 들고 나타나는 그가 있다면 일단은 에구머니나 당신 제정신이세요? 이런 나를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한마디 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겠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는 게 여러 번의 회유와 겁박과 유도심문과 얕은 수에도 흔들림없이 증명이 된다면 큼큼, 당신의 인생을 내가 망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그 다음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혼돈과 혼란이 가득한 내 내면만큼이나 어지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겠지. 그 모든 안달복달과 굿거리장단과 난리바가지와 죽네 사네 이대로는 못사네 자진모리 휘모리 장단의 강에 머리 끝까지 잠길 정도로 깊은 지점을 지나야 비로소 강의 저 편 엘도라도에 다다를 수 있을 터인데 이를 어쩌나, 나는 공연한 입술만 깨물며 불어나는 강물만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고 파티원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같이 손잡고 강 건너실 파티원 구합니다 (1/2)
그간 했던 머리 중 지금 머리가 제일 맘에 든다. 여기서 말하는 그간의 기간이 감히 평생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평생에 걸쳐서 내 몸과 화해하는 중이다. 이것도 그 일환인가 보다. 나는 건강한 머리결을 물려받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여 그 머리결을 유지할 수 있는 충족된 환경 안에 있다. 내 머리색은 천연 갈색이다. 미용실에 가면 어머 어쩜 머리숱이 이렇게 많고 색도 이렇게 예쁘냐고, 색도 그냥 갈색이 아니라 회색 기가 도는 갈색이라고, 이런 색은 흔치 않다며 정말 타고 나기를 잘 타고 났네요 하는 소리를 매번 듣는다. 그럼 나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1) 금시초문이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머 그래요? 라는 답을 하거나 혹은 2) 너무 잘난 척하지도, 너무 면구스럽지도 않게 그 중간 어디쯤 미소를 지으며 아 그런 말씀 많이들 해주시더라구요. 하는 대답을 한다. 내가 봐도 참 지랄이다… 어릴 때 도저히 관리가 되지 않아 미워했던 곱슬은 적절한 미용시술을 받아 감쪽같이 생머리로 변신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 미용기술 만세다. 동네 곳곳에 실력자들이 숨어 있다. 그간의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통해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볼륨과 길이, 시술을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고착화되어가는 거고, 어떻게 보면 숙달되어 가는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머리숱이, 평생 차고 넘치기만 하는 듯하여 은근히 자랑하는 듯 너무 많아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게 만드는 이 머리숱이 언젠가 나를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기대하고 있다의 공포스러운 변형이다. 예기불안은 실제로 그 일이 현실에 일어남으로써 완성된다. 나는 그날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너무 함부로 입을 놀려 나를 수호해주고 있는 은혜의 천을 스스로 걷어차버리고 깨방정이처럼 나다니다가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뒤에서 덮쳐오는 불행의 그물에 깔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삼가려 한다. 물론 잘 되지는 않는다.